슬픈 외국어
책 제목을 "이윽고 슬픈 외국어"라고 정한 이후,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문득문득 절실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슬픔이라지만 외국어를 쓰지 않을 수 없다든가 잘 못한다든가 해서 슬프다는 것 아니다. 물론 조금은 그럼 점도 있겠지만, 내가 마음으로부터 말하고 싶은 건 나에게 있어 자명성을 갖지 못한 외국의 언어가 무슨 인과 관계인가 이방인인 나를 둘러싸고 있는 그 상황 자체에 어떤 종류의 슬픔과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 한 작가로서 나는 아마도 이 슬픈 외국어를 안고서 줄곧 살아가게 될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슬픈 외국어' 중에서
언어의 자명성 어쩌구는 사실 언어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가진 작가한테나 통하는 사치스러운 말이고 사실 외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전에 그까짓(!) 외국어 때문에 멀쩡한 사람 바보 되는 꼴을 종종 당하기 때문에 더 서글퍼집니다. 열심히 먼가를 얘기하기는 하는데 혀가 꼬이고, 아 이번엔 어느 정도 유창한 걸? 했는데 나중에 잠자기 전에 생각해 보면 저절로 벌떡 몸이 일으켜질 만큼 말도 안되는 말이였다던가 하는 에피소드는 사실 셀 수도 없죠.
그래서 서로의 실수담을 낄낄 거리면서 교환하면서 안도하려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 무궁무진한 실수담은 게시판에서..
책 제목을 "이윽고 슬픈 외국어"라고 정한 이후,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문득문득 절실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슬픔이라지만 외국어를 쓰지 않을 수 없다든가 잘 못한다든가 해서 슬프다는 것 아니다. 물론 조금은 그럼 점도 있겠지만, 내가 마음으로부터 말하고 싶은 건 나에게 있어 자명성을 갖지 못한 외국의 언어가 무슨 인과 관계인가 이방인인 나를 둘러싸고 있는 그 상황 자체에 어떤 종류의 슬픔과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 한 작가로서 나는 아마도 이 슬픈 외국어를 안고서 줄곧 살아가게 될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슬픈 외국어' 중에서
언어의 자명성 어쩌구는 사실 언어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가진 작가한테나 통하는 사치스러운 말이고 사실 외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전에 그까짓(!) 외국어 때문에 멀쩡한 사람 바보 되는 꼴을 종종 당하기 때문에 더 서글퍼집니다. 열심히 먼가를 얘기하기는 하는데 혀가 꼬이고, 아 이번엔 어느 정도 유창한 걸? 했는데 나중에 잠자기 전에 생각해 보면 저절로 벌떡 몸이 일으켜질 만큼 말도 안되는 말이였다던가 하는 에피소드는 사실 셀 수도 없죠.
그래서 서로의 실수담을 낄낄 거리면서 교환하면서 안도하려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 무궁무진한 실수담은 게시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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